산토 아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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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산토 아키코는 일본의 정치인이자, 배우, 성우이다. 1942년 도쿄에서 태어났으며, 11세에 연예계에 데뷔하여 라디오 프로그램 사회자와 드라마, 영화 배우로 활동했다. 1974년 자유민주당 공천으로 참의원 의원에 당선되어 정계에 입문했으며, 과학기술청 장관, 참의원 부의장, 참의원 의장을 역임했다. 2019년에는 여성으로서는 두 번째로 참의원 의장이 되었고, 참의원 의원 최다선 기록을 세웠다. 식육기본법 제정, 헌법 9조 개정 찬성 등 정책 활동을 펼쳤으며, 센카쿠 열도 국유화 과정에 관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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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토 아키코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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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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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산토 아키코 |
출생일 | 1942년 5월 11일 |
출생지 | 도쿄부도쿄시 세타가야구 (현재의 도쿄도세타가야구) |
소속 정당 | 자유민주당 (다나카파 → 산토파 → 아소파) |
학력 | 분카 가쿠인 문학부 문학과 졸업 |
직업 | 배우, 탤런트, 정치인 |
친척 | 대숙부: 고다마 료타로 (중의원 의원) |
웹사이트 | 산토 아키코 홈페이지 |
의정 활동 | |
참의원 의원 | 현직 |
선거구 | (전국구 →) 비례구 |
당선 횟수 | 8회 |
임기 시작 | 1974년 7월 7일 - 1992년 7월 7일, 1995년 8월 25일 - 1996년 10월 2일, 2001년 7월 29일 |
주요 경력 | |
참의원 의장 | 재임 기간: 2019년 8월 1일 - 2022년 8월 3일 |
참의원 부의장 | 재임 기간: 2007년 8월 7일 - 2010년 7월 30일 의장: 에다 사쓰키 |
과학기술청 장관 | 재임 기간: 1990년 12월 29일 - 1991년 11월 5일 내각: 제2차 가이후 개조 내각 |
원자력위원회 위원장 | 재임 기간: 1990년 12월 29일 - 1991년 11월 5일 내각: 제2차 가이후 개조 내각 |
훈장 | |
훈장 | 레지옹 도뇌르 훈장 슈발리에 국가 공로 훈장 그랑트피시에 르네상스 프랑세즈 명예상 솜리에 도뇌르 |
2. 생애
산토 아키코는 1942년 5월 11일 도쿄도 세타가야구 출신으로,[1] 다이쇼 시대 중의원 의원을 지낸 고다마 료타로의 증손녀이다.[1] 어린 시절 작곡가 단 이쿠마의 소개로 방송계에 입문하여 배우와 사회자 등으로 활동했다.[2][66]
1974년 다나카 가쿠에이 당시 총리의 권유로 정계에 입문하여 자유민주당 소속으로 참의원 의원에 당선되었다.[66][70] 이후 과학기술청 장관,[70] 여성 최초의 참의원 부의장,[70] 두 번째 여성 참의원 의장[74][3] 등 주요 직책을 역임했다. 2019년 선거에서 당선되며 사상 최초로 참의원 8선 기록을 세웠다.[73] 오랜 기간 자민당 내 파벌 시코카이(아소파)의 주요 인물로 활동하며 2015년에는 여성 최초로 파벌 회장을 맡기도 했다.
2. 1. 초기 생애 및 연예계 활동
1942년 5월 11일 도쿄부 도쿄시 세타가야구(현 도쿄도 세타가야구)에서 태어났다.[6] 그녀는 다이쇼 시대에 중의원 의원을 지낸 고다마 료타로의 증손녀이다.[1] 작곡가 단 이쿠마의 소개로 11세에 라디오 도쿄(현 TBS 라디오)의 어린이 프로그램 사회자를 맡으며 연예계에 발을 들였다.[6][2] 15세에는 라디오 드라마 "赤胴鈴之助|아카도 스즈노스케일본어"의 내레이션을 담당했다.[6]16세에 도에이와 전속 계약을 맺고 영화계에 데뷔했으며,[6] 다카쿠라 켄과 함께 "太郎シリーズ|타로 시리즈일본어" 등에 출연하며 인기를 얻었다.[6]

또한 해외 드라마 미션 임파서블이나 여자 형사 페퍼 등의 일본어 더빙에 참여하며 성우로서도 활동했다.[14]
2. 2. 정치 경력
1974년, 당시 내각총리대신이었던 다나카 가쿠에이의 권유로 제10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에 자유민주당 공천을 받아 전국구로 출마하였다.[66][6] 약 125만 표를 얻어 32세의 나이로 최연소 참의원 의원으로 당선되었다.[70][13] 이후 1980년 참의원 선거(전국구)와 1986년 참의원 선거(비례대표)에서도 당선되어 3선 의원이 되었다.1978년에는 제1차 오히라 내각과 제2차 오히라 내각에서 환경청 정무차관을 역임했다.
1990년 12월, 제2차 가이후 개조 내각에서 과학기술청 장관으로 임명되어, 사상 6번째 여성 각료로 입각했다.[70][13]
1992년 제16회 참의원 선거에서는 비례대표 명부 순위가 낮아 낙선했다. 1995년, 동료 의원 다나베 데쓰오(
2001년 제19회 참의원 선거에 비례대표로 다시 출마하여 당선, 5년 만에 의원직에 복귀했다. 이후 2007년, 2013년, 2019년 선거에서 연속으로 당선되었다.
2007년 제21회 참의원 선거에서 자유민주당이 과반수를 잃어 제2당이 되면서, 관례에 따라 자민당 몫이 된 참의원 부의장 자리에 산토가 선출되었다. 이로써 여성 최초의 참의원 부의장이 되었으며, 취임과 함께 관례에 따라 당적에서 이탈했다.[70][15][16]
2012년, 참의원 일불(日佛) 우호 의원 연맹 회장 등 프랑스와의 우호 관계 증진 활동을 인정받아 프랑스로부터 레지옹 도뇌르 훈장 슈발리에를 수훈했다.[17]
2015년 4월, 반초 정책연구소(
2017년 7월, 반초 정책연구소가 이코카이(
2019년 제25회 참의원 선거 당시 산토의 나이는 77세로, 참의원 비례대표 정년을 70세로 규정한 당내 규칙에도 불구하고 특례 공천을 받았다. 이는 2013년 제23회 참의원 선거에 이은 두 번째 특례 공천이었다.[72] 이 선거에서 당선되어 참의원 의원으로는 사상 최초로 8선 기록을 세웠다.[73]

2019년 8월 1일 소집된 임시 국회에서 만장일치로 제32대 참의원 의장으로 선출되었다. 이는 오기 지카게(
2022년 10월, 참의원 의장직에서 퇴임한 후 자민당에 복당하고, 시코카이(아소파)에도 복귀하여 파벌 고문에 취임했다.
2024년 8월, 2025년 7월로 예정된 제27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의 자민당 비례대표 후보로 공천이 내정되었다. 선거 시점에 83세가 되어 정년 규정(70세)을 초과하지만, 2013년과 2019년에 이어 "총재가 국가적으로 유능한 인재라고 인정한 자"로서 다시 한번 특례 공천을 받았다. 이로써 자신의 최다선 기록을 경신하는 9선에 도전하게 되었다.[21][22]
3. 정책 및 주장
- 자유민주당 식육조사회장으로 재임하던 2005년, 의원 입법으로 "식육 기본법" 제정을 주도했다.[70][23]
- 선택적 부부 별성제 도입에 반대한다.
- 2008년 12월, 미혼의 일본인 아버지와 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가 나중에 인지되면 일본 국적을 취득할 수 있도록 하는 국적법 개정안의 참의원 본회의 표결에서 기권했다.[75][26]
- 헌법 제9조 개정에 찬성하며, 자위대의 명칭을 다른 나라의 군대처럼 "국방군"으로 변경해야 한다고 주장한다.[76] 또한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인정하는 데에도 찬성한다.[76]
- 후텐마 비행장을 오키나와현 나고시 헤노코 지역으로 이전하는 계획(후텐마 기지 이전 문제)에 찬성한다.[76]
- 총리나 각료가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는 것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보인다.[76] 이는 제2차 세계 대전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에 대한 한국 등 주변국의 비판적 시각과는 거리가 있는 주장이다.
- 저소득층을 위해 일부 품목의 소비세를 감면하는 경감세율 도입에 반대한다.[76]
- 일본의 고령화와 연금 가입자 감소로 인해 연금 지급액 수준이 낮아지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본다.[76]
- 원자력 발전소는 필요하며, 해외에도 수출해야 한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76]
- 기업이 직원에게 금전적 보상을 제공하면 해고를 더 쉽게 할 수 있도록 노동 시장 규제를 완화하는 것에 찬성한다.[76]
- 사형 제도 존치에 찬성한다.[76]
- 2015년, 선거권 연령을 "만 18세 이상"으로 낮추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의 참의원 본회의 표결에서 기권했다.
- 자유민주당 간접 흡연 방지 의원 연맹 회장으로서, 2015년 공공 장소에서의 간접 흡연 방지를 의무화하는 "수동 흡연 방지법" 골자안을 발표했다.[37] 2017년에는 후생노동성이 발표한 음식점 등의 건물 내 원칙 금연을 골자로 하는 건강 증진법 개정안에도 찬성했다.[38] 다만, 담배 가격 증세를 통한 가격 인상을 추진하며 "예를 들면 과감하게 한 갑에 1000JPY 정도로 할 수 있다"고 발언하여 논란이 되기도 했다.[77]
- 2016년 사가미하라 장애인 시설 살상 사건 이후, 범죄 예고범이나 재범 우려가 있는 성범죄자 등에 대해 GPS 장치를 몸 속에 삽입하는 등의 법 정비 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하여 인권 침해 논란을 일으켰다.[78][79][42][43][44][45]
- 2019년 9월, 대한민국 국회의장 문희상이 천황(당시 아키히토)을 "전쟁 범죄 주범의 아들"이라 칭하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천황의 사죄가 필요하다고 발언한 것에 대해, 남관표 주일 대사에게 "심히 무례하고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항의하고, 발언 철회와 사죄를 요구하는 서한을 보냈다.[46][47]
- 2021년 6월, 대만의 WHO 참가를 인정하는 결의안이 참의원 본회의에서 채택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이는 중국의 반대로 WHO 총회에 참가하지 못하는 대만의 옵서버 참가를 촉구하는 내용이다.[48][49]
- 2023년 6월, 성소수자에 대한 이해 증진법(LGBT 이해증진법)의 참의원 본회의 표결에서 찬성 당론 구속에 반발하여 퇴석했다. 그는 "(성소수자에 대해) 차별 의식은 없지만 구별은 필요하다"며 여성 화장실 등에서의 사칭 범죄 우려를 이유로 들었다. 이 행동으로 당 지도부로부터 엄중 주의를 받았다.[50][51][52]
- 1987년, 참의원 환경특별위원장 시절 골프 프로그램 녹화 참여를 위해 공해 건강 피해 보상법 관련 본회의에 결석한 사실이 드러나 두 달 만에 위원장직에서 사임했다.[23]
- 2007년 6월, 연금 기록 문제와 관련하여 야나기사와 하쿠오 당시 후생노동대신의 국회 답변이 "겉만 번지르르하고 진심이 담겨 있지 않다"고 공개적으로 비판했다.[24]
- 2012년, 도쿄도의 센카쿠 열도 매입 구상 과정에서 이시하라 신타로 당시 도쿄도지사와 지권자 사이의 비밀 회담을 중개하는 역할을 했다. 이는 일본 정부의 센카쿠 열도 국유화로 이어졌다.[30][31][32]
- 2015년, 중의원 헌법 심사 회에서 정부가 제출한 평화 안전 법제에 대해 자민당 추천 참고인이 위헌이라고 비판하자,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고 애매하게 얼버무리는 것은 문제"라며 국회 운영에 미칠 영향을 우려하는 발언을 했다.[39][40][41]
4. 논란 및 사건
- 1987년, 참의원 환경 특별 위원장 재임 중 TV 도쿄의 골프 프로그램 "골프는 인생이야" 녹화를 이유로 공해 건강 피해 보상법에 관한 본회의에 결석한 것이 문제가 되어, 취임 2개월 만에 위원장직에서 사임했다.[23]
- 2008년 1월, 국회 회기 중임에도 불구하고 다니엘 이노우에 상원 의원과의 회담을 명목으로 하와이주 호놀룰루로의 개인 여행을 참의원 의원 운영 위원회에 신청하여, 정부 의장은 회기 중 국외 여행을 자제하는 관례를 깨고 물의를 빚었다.[25]
- 2008년, 참의원 본회의에서 미혼의 일본인 아버지와 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가 나중에 인지되면 일본 국적을 취득할 수 있도록 하는 국적법 개정안 표결에 기권했다.[26]
- 2010년 12월, 자민당 당기 위원장으로서 오무라 히데아키 중의원 의원(후일 아이치현 지사)의 제명을 결정했다. 오무라가 다음 해 아이치현 지사 선거에서 자민당 후보에 맞서 가와무라 다카시 나고야 시장과 연대하여 출마를 표명하자, 이를 반당 행위로 규정하고 탈당계를 수리하지 않은 채 제명 처분했다. 이 결정에 대해 스가 요시히데, 고노 타로 등 동기 의원들의 반발이 있었으나, 당 지도부는 오무라가 지사 취임 후 보궐선거에서 자민당 후보가 아닌 다른 후보를 지원하자 제명 입장을 고수했고, 재심사 청구도 기각되어 제명이 확정되었다.[28][29]
- 2012년 도쿄도의 센카쿠 열도 구입 구상 당시,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 지사와 센카쿠 열도의 지권자(쿠리하라 가문) 사이의 비밀 회담을 중개했다. 30년 지기인 지권자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 소유했지만 개인적 한계가 있다", "현 정부는 믿을 수 없다"는 상담을 받고, 2011년 9월부터 이시하라 지사와 지권자 간의 만남을 주선하여 매각 결정을 이끌어냈다.[30][31][32] 이는 이후 일본 정부가 2550만달러에 토지를 매입하는 센카쿠 열도 국유화로 이어졌다.
- 2013년 제23회 참의원 의원 통상 선거에서 71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자민당의 비례대표 70세 정년제 규정의 예외를 인정받아 공천되었다. 이는 센 치카게, 오노 기요코 등 다른 중진 의원들에게는 엄격하게 적용되었던 규정이었기에 특례 조치로 여겨졌다.[33] 2019년 제25회 참의원 의원 통상 선거에서도 77세의 나이로 재차 특례 공천을 받아, 이례적으로 두 번 연속 정년 예외를 적용받았다.[35]
- 2013년 12월, 국가 전략 특구 법안 심의가 야당 출신 위원장 하에서 지연되자, 여당이 위원장을 교체하는 이례적인 상황에서 민주당의 미즈오카 슌이치를 대신하여 내각 위원장으로 선임되었다. 법안 표결 후 약 1개월 만에 퇴임하고 미즈오카가 복귀했다.[36]
- 2015년, 중의원 헌법 심사 회에서 자민당 추천 참고인이었던 하세베 야스오 와세다 대학 교수가 정부가 제출한 평화 안전 법제를 위헌이라고 비판하자,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고 모호하게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향후 국회 운영에 미치는 영향을 우려한다"고 발언하며 비판적 입장을 보였다. 이 사건 이후 헌법 심의는 정체되었고, 여당 측 책임자였던 후나다 겐 간사는 실질적으로 경질되었다.[39][40][41]
- 2016년 사카이하라 장애인 시설 살상 사건 발생 후, 범죄 예고범이나 재범률이 높은 성범죄 전력자 등에게 GPS 장치를 부착하는 법 정비 논의가 필요하다는 견해를 밝혔다.[42][43][44][45]
- 2019년 9월, 대한민국 국회의장 문희상이 아키히토 상왕을 "전쟁 범죄 주범의 아들"이라 칭하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천황의 사죄가 필요하다고 발언한 데 대해, 남관표 주일 대사에게 "심히 무례하고 받아들일 수 없다"며 항의했다. 이후 문 의장으로부터 서한을 받았으나 내용이 불충분하다며 발언 철회와 사죄를 재차 요구하는 서한을 보냈다. 같은 해 11월 G20 국회의장 회의에 문 의장이 초청되었으나, 한국 측의 개별 회담 요청에는 적절한 상황이 아니라며 응하지 않았다.[46][47]
- 2023년 6월, 참의원 본회의에서 성소수자(LGBT)에 대한 이해 증진법 표결 시, 찬성 당론 구속에 반하여 퇴석했다. 그는 "(성소수자에 대해) 차별 의식은 없지만 구별은 필요하다", "여성 화장실 등에서 사칭에 의한 범죄도 일어났다. 법안 통과로 무엇이든 받아들이는 풍조가 되면 심각한 문제"라고 이유를 밝혔다. 이 당론 위반으로 참의원 자민당 지도부로부터 엄중 주의를 받았다.[50][51][52]
5. 기타
증조부는 전직 가나가와현 참사를 지냈으며 무쓰 무네미쓰의 심복이었던 기이 지역[81] 출신의 교육자이자 관료인 산토 지카토(山東直砥일본어)이다.[55][56] 작은할아버지는 전직 중의원 의원이었던 고다마 료타로(児玉亮太郎일본어)이다.[58]
소속된 주요 의원 연맹은 다음과 같다.
6. 역대 선거 결과
(전국구)
(비례구)
(승계)